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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정의와 조화 ‪#‎정의와‬ 조화정의는 이분법이다. 옳고 그름으로 가른다. 조화는 어울림이다. 옳은 것은 칭찬하고, 그른 것은 때론 눈감아 주고, 때론 피해간다. 대구한국일보 쇄신안을 추진할 적에 나는 정의 대신 조화의 묘를 살리려 했다. 하나 상대가 있는 일은 조화보다 정의를 앞세워야 할 때가 불가피하게 있다. 정의가 '칼날'과 짝을 이뤄 쓰이는 이유다. 칼 대신 병을 들었더니, 선배들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렇게라도 대구한국일보의 '용의 목구멍(아첨에 능한 자)'의 못된 버릇을 고쳐놓으려 했다. 그건 선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원했던 바다. 하나 정작 정의의 칼날을 빼들었더니 선배들이 이해를 못했다. '용의 목구멍'의 역겨운 내 나는 목구멍에 칼만 겨우 겨누다 만 꼴이 됐다. 나는 사표를 던졌고, 모든 권한은 나머지..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인격살인 ‪#‎인격살인‬ 살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행위가 있고, 말로써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가 있다. 전자를 일반적인 살인이라고 하고, 후자를 인격살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후자에는 그 심각함을 잘 모르거나 '진짜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라고 자조하기도 하고,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이 관성화되고 일상화되면 인격살인을 행하는 자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자나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게 된다. 이 문제가 조직에서 발생하게 되면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현상이 시나브로 생겨나기도 한다. 일면 구조적으로 필연적이다. 신입사원 혹은 경력사원 정도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격살인이 직접적으로 자기에게 가해질 때, 경력..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기자‬ 보조자들 ‪#‎기자‬ 보조자들 1. '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일주일 전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하나 건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대구에 간 김에 인터뷰를 마쳤다. 어제 자(18일) 한국일보에 실렸다. 사비 3억원을 털어 이육사문학관을 개관한 박현수 시인(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의 스토리다. 이 뉴스는 애초 '대구동학연구회' 멤버 추연창 선생이 개관식에 다녀와서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이건 독자 밥상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란 별난 이름하며, 박 시인의 풍모하며, 박물관의 모든 것을 담은 책자하며, 이건 딱 봐도 재미있는 사연이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나는 이 뉴스를 한국일보에 싣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구한국일보가 발행하는 에 꼼꼼하게 싣고 싶었다. 잡지 뉴스..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싸부' 황태순(정치평론가) ‪#‎'싸부‬ 황태순'(정치평론가) 오늘 황태순 선배께 전화를 드렸다. 조만간 찾아 뵙겠다고. 황 선배는 한때 내가 '싸부'로 모셨던 분이다. 2011년 1월 14일(사진) 밤, 서울프레스센터 뒷골목을 매섭게 가르는 칼바람을 뒤로 하고, 사케집으로 들어갔다. 신문사를 퇴사하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영남일보 서울식구들한테 인사하러 갔다, 송국건 본부장(영남일보 서울정치본부)의 주선으로 황 선배와 함께하게 됐다. 나는 당시 '아주 잘 났었'다. 잘났던 나는 속사포처럼 내 생각을 이야기했고, 한참 듣던 황 선배는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얌마! 볼펜하고 수첩 빼 봐." 정말이지 코가 막히고, 귀가 막혔다.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헷갈렸다. 같이 한 선배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빨리 ..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아내의‬ 장난, 문장의 유희 ‪#‎아내의‬ 장난, 문장의 유희 문장 기술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축약과 부연이다. 일반적으로 시와 신문기사의 속성이 축약이라면, 논문의 그것은 부연이다. 축약의 일장은 메시지가 압축돼 전달이 용이하다는 것이고, 일단은 여러 해석과 해설을 촉발시켜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연의 일장은 추가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가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고, 일단은 읽어내기가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14일) 나는 페이스북에 아래 사진과 함께 깡총한 두 문장을 남겼다. "주말에도 야근한 아내를 위하여. 아내가 준비했다." 얼핏 비문처럼 보이지만 비문이라 할 수는 없는 문장이다. 우리 부부는 새벽 1시 30분에 낙지볶음과 간단한 안주를 마련해 맥주를 한 캔씩 했다. 맥주를 마신 이유는 ..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선배先輩 #선배先輩 선배先輩는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ㆍ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이란 뜻이다. 어쩌다 보니, 유명상이란 언론계 선배를 만났다. 그의 열정에 매료돼 내 뜻을 물리고 한국일보 대구본부 호에 올라탔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명확했다. 문제는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상을 '미친 놈'이라고도 했다. 나는 달리 봤다. 그 열정과 비전이라면 최종 목표점까지는 늦게 도달하거나 혹은 가지 못하더라도 범인들과 비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그래서 힘을 보태기로 했다. 2년이 흘러 한국일보 새 주인이 나타났다. 유명상 선배의 숙원 중 하나였던 지방본부 독립법인(한국일보 대구본부-->대구한국일보)을 이뤘다. 한국언론사의 새 역사다. 체제..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뿌리>의 정석 ‪#‎의 정석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양반 후손의 자세'를 심심찮게 듣고 살았다. 시조, 중시조, 파(派)를 의무적으로 외웠다. 중고등학교 때 어른들을 만나면, "자네는 본이 어딘고?" 질문을 단골로 받았다. "청송"이라고 하면, "무슨 파인가?"이라는 질문을 이어 받았다. "풍덕공파"라고 하면, 어른들은 "역시 뼈대 있는 후손은 다르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데 머리가 좀 더 굵고, 주체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대학 때 의문이 생겼다. 양반의 체계는 그렇게 굳건한 게 아니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비롯됐다. 광해군 때 나라가 어려워 공명첩을 남발해 관직을 주거나, 신분 세탁을 해줬다는 사실 그리고 조선후기 상업이 발달하고, 서양열강의 위협으로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었다는 사..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토지 촬영장>에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다 #에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다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 '토지문학관'을 가자고 한 것은 누나였다. 이번 방학 동안 논문만 내리 2편을 마무리하고, 머리도 식힐 겸 새 논문에 사용할 토지문학관 구성 요모조모를 따져보겠다고 어머니를 대동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나는 운전기사로 따라갔다. 드라마 세트장을 둘러보던 누나는 내게 "이게 스토리텔링 아니냐"고 했다. 나는 "우연의 일치지. 스토리텔링은 아니다"고 했다.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박경리 선생은 소설을 쓴 거지. 구한말 이곳 평사리 최참판댁 딸 서희의 삶을 모티브로 우리네 민초들의 삶, 전 영역으로 확장해 대작을 만들어낸 것이지. 그럼 소설이 스토리텔링이냐. 그렇게 말하면 소설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분들은 동의하지 않겠지. 그럼 소설과 스토리텔링은 무엇이 ..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글로벌새마을운동과‬ 한국 ‪#‎글로벌새마을운동과‬ 한국 어제(22일)는 새마을의 날이었다. 1970년부터 박정희 정부에 의해 주도된 새마을운동은 80년대(박정희 사후) 학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관 주도의 대중동원운동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관민이 합동한 대한민국 근대화운동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의 평가는 제도권 학자들에 의해 주도 되었고, 후자의 평가는 주로 박정희 시절에 몸담았던 관료들에 의한 산물이다. 내가 보기에 전자의 평가는 새마을운동+권위주의정부, 군사독재정부란 시대 상황이 두루 섞여진 평가인 듯하고, 후자의 평가는 새마을운동 자체만 분석한 것 같다. 199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에 관한 연구는 숙졌다. 80년대 봇물처럼 터져나왔던 논문들도 두 시각에서 더 진전이 없었고, 전두환 정권 시절 새마을운동 중앙본..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그리움, 사무침 ‪#‎그리움‬, 사무침 살다 보면 지난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립다는 생각을 넘어 사무치다는 감정이 온몸을 몸서리치게 휘감아칠 때가 있다. 어제 회사에서 회사에 맞는 적화된 프로그램을 새로 깔면서 문서며, 사진을 새로 정리해야 했다. 그러다 이 사진이 눈에 밟혔다. 이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사진 한 장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개인적으로 그리움, 사무침, 환희, 슬픔의 감정들이 한데 뭉개어진 사진이다. 2013년 1월 16일, 서울 목동의 어느 카페에서 찍은 것이다. 형님이 운영하는 영어학원 앞의 카페다. 나는 2012년 1월부터 2013년 1월 19일까지 형님에게 더부살이를 했다. 서울서 철수할 때가 서른넷이었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일이 있었다. 형님이 그해 1월 20일(대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