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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내가 박원순 후보라면...

박원순 범 야권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를 찾아 대학생들이 요구하는 서울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 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끝내 무상급식 찬반투표 결과는 투표함을 개봉도 못한 채 일단락됐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책임지고 사퇴키로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서울시장 후보가 거론됐다. 그건 세찬 바람과 같았다. 그 바람은 국민이 만들었고, 그 바람 가운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떠다녔다. 평소엔 뜬구름 같던 여론이, 그 때를 만나자 무섭게 집결했다. 아마도 박원순은 그 분위기를 처음 접했을 땐 그저 너털웃음을 지었거나, 황당해하며 침묵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한 그 때, 그는 백두대간을 종주 중이었다.

#. 종주를 해 보신 일이 있는가. 머리가 복잡한 상태든, 그렇지 않은 상태든 산에 오르는, 그것도 종주에 나선 사람 열이면 열, 모두 머리를 청정하게 비우고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걷다 보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다리며 팔 어깨가 쑤시기 일쑤다. 그래도 그 끝을 향해 하염없이 걷다 보면 무상무념무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저 자연도 무심으로 바라보게 되는 게 종주의 묘미다. 박원순은 백두대간 종주를 이틀가량 남기고 저 밑바닥에서 온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소식에 박원순은 입을 닫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성싶다. 
그동안 언론에 비쳐진 박원순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렇다.

#. 언론은 박원순의 의사와 무관하게 앞다투어 물타기를 시작했다. "박원순 출마." 박원순의 대변인격인 조국 서울대 법대교수는 "안 나간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곧 뒤집어졌다. 종주를 끝마치고 내려와 밝히겠다는 게 공식입장이었다. '박심(朴心)'은 산중에서 선 건 아닌 듯하다. 백두대간 신선놀음에선 그런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말했듯이 있던 생각도 말끔히 거짓말 같이 없게 만드는 게 종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없던 생각도 다시 생겨난다. 박원순은 측근과 수의를 한 뒤, 안철수 교수와 회동했을 것이다.

#. 박원순도 당황했겠지만, 안철수는 더 당황했을 것이다. 그나마 정치와 근거리에 있던 사람은 박원순이다. 시민단체지만 정당처럼 조직을 갖춘 쪽도 박원순이다. 안철수는 그에 비하면 조직은 전무했고, 정치관심도 적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박심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안철수는 박원순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통큰 양보'를 했다. 옆에 있던 박경철 시골의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의미를 나는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정치권은 빠르게 합종연횡에 나선다. 범야권이란 이름으로. 박원순은 그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박원순은 숱한 시민(혹은 국민) 속 마음에 내재된 '저 사람은 청렴결백한 사람, 서울시민을 진정 원할 사람'이란 믿음에 앙금을 만들어냈다. 다르다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민운동가라면서 매우 '정치적인' 시민운동가의 모습을 몸소 보여줬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범야권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그다지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란 인식이 퍼져나갔다. 하나 박원순은 네거티브 그만하라고 일축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 지난 13일 서울시장 본선행이 시작됐다. 걷잡을 수 없이 의혹이 터져나왔다. 흡사 고구마줄기 같았다. 선거의 단골메뉴인 재산 문제부터 병역제, 이념 문제, 학력 문제, 국가관 문제, 여기다 시민운동가 이미지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상식 밖으로 많은 대기업 후원금 문제까지. 박원순은 온갖 정치검증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TV 토론도 뜨거워지고 있다. 13일 밤, '100분 토론'에서 박원순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책적 부재까지 코너에 몰리는 모습에선 측은하기까지 했다.

#. 이제 박원순은 나쁜 쪽으로는 '세계의 양심'으로 추앙받는 바출라프 하벨 전 체고 대통령과 비교된다. 바출라프 하벨은 
 ‘벨벳 혁명’을 지휘해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체제 붕괴의 단초를 열었다. 벨벳 혁명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헌장 77’이라는 반체제 운동이다. 반정치 운동이라고도 한다. 그는 사회운동 한다고 대기업에서 거액의 헌금을 받지 않았다. 도덕성의 가장 높은 고지에서 반체제 운동과 정치지도자의 생애를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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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쁜 쪽으로는 그라민은행을 만들어
 ‘방글라데시 빈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교수와 비교된다. 유누스는 2007년 2월 ‘시민의 힘’이란 정당 창당을 선언했다. 곧 시민운동가였을 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작은 실수까지 추악한 비리 혐의로 둔갑했다. 각종 스캔들에 시달려온 그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지난 3월 그라민은행에서도 축출당했다. 

#. 박원순은 볼꼴, 못 볼꼴 다 보여줬다. 내가 만약 박원순이라면, 이쯤에서 "자기성찰이 부족한 제가 서울 시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로 서울시장 후보에서 물러날 것이다. 더 가면, 박원순의 '희망'이 '그들만(극소수 시민운동가 혹은 부르주아 시민운동가)의 희망' 일 뿐이라는 것을 보다 명백하게 서울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승리한다 해도, 이해관계로 잠시 뭉친 범야권의 밥그릇 싸움은 누가 정리할 텐가. 차라리 이쯤에서 관두면, 내년 대선에선 야권 동정표라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은 글머리 저 사진처럼 시민운동가로서 청춘들에게 희망을 설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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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경북 김천 대가람 직지사 아래 100여 가구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서 시골총각이 구구하지만, 절절하게 뱉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