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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여자, 장롱 그리고 벽오동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가지에 걸렷세라.

필시 이 시를 지은 이는 일장춘몽으로 끝났겠으나, 오늘날과 비유하자면 로또를 부여잡고 대박을 꿈꾸는 민초의 심리와 동상(同床)의 일몽(一夢) 아니었을까. 



랜만에 직지사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직지사 식당가 주차장을 지날 무렵, 시내가 쪽에 선 오동나무를 보고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장과 농을 구별할 수 아냐?”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했다. 되레 ‘장롱은 한단어가 아니냐’고 여쭈었다.

 

아버지께서 오동나무를 보니 생각난다고 하시면서 장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 아버지께서 유년시절만 하더라도 곳간 사정이 괜찮은 집 마당에는 벽오동을 심었다. 특히 여식이 태어나면 벽오동 심는 건 일종의 ‘고고(呱呱) 뒤풀이(ceremony)’였다.

 

여기엔 깊은 뜻이 담겼다. 여식이 자라 출가할 때 ‘농’을 짜줄 요량으로 벽오동을 심는 거였다. 혼수(婚需)의 귀한 재료였던 셈이다.

 

이때만 해도 ‘장’의 개념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장은 오늘날 하의 양복을 걸 수 있을 만큼 길쭉한 걸 말하는데, 천장이 높아야 장을 들일 수 있어 고관대작의 집이 아니라면 공간적 한계에 부딪혀 만들어봐야 무용지물일 것이 뻔했다.

 

그에 반해 농은 옷가지를 접어 넣을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높이가 낮고 넓이가 길다. 토담집, 흙집, 초가집에 살던 대다수 민초들에게는 의류 저장고로 농이 적격이었으리라. 그리고 농 하나를 놓으면 1단 농, 두 개를 놓으면 2단 농으로 불렀다.

 

그런데 왜 하필 벽오동으로 농과 장을 짰을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벽오동은 용, 거북, 기린 등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일찍이 용과 더불어 우리 생활에 길상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둘은 벽오동은 가볍고 물러 웬만한 충격에도 완충작용을 한다. 날카로운 것에 찍혀도, 둔기에 짓이겨도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오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셋은 벽오동의 독특한 향은 옷에 좀이 먹지 않도록 하는 신비의 힘이 담겨있다. 오늘날처럼 옷장 곳곳에 나프탈렌을 구비해 둘 필요가 없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벽오동은 농의 재료로 널리 사랑받았다. 그러다 70년대를 거치면서 새마을운동으로 집이 신식화되고 천장이 높아지면서 장이 만들어졌다. 그 편리에 따라 장과 농이 함께 짜진 장롱이 탄생하기에 이렀던 것이다.

 

물론, 오동나무도 장롱의 재료였다. 하지만 오동은 집 마당에 심기에는 너무 크게 자랐으므로 산야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참고로 벽오동은 대나무와 함께 심는데, 그 까닭도 재미가 쏠쏠하다.

 

봉황은 오동나무 아래 깃들고 삼천년 만에 한번 열린다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고 전하기 때문이란다.

 

요즘은 벽오동을 조경수로 사용하는 집도 드물거니와, 눈 크게 뜨고도 그것이 벽오동인지 뭔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 영험함을 지녔다는 벽오동을 보려면 경남 의령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 생가를 방문해 보시라. 그곳에 가면, 안채 왼쪽에 자리한 광 한켠에 벽오동과 함께 뒷산 쪽에 심어진 대나무를 볼 수 있다.

 

호암 생가에 상근하는 문화해설사는 벽오동의 영험함을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다만 역사는 승리한 자의 몫이란 불문율(?)을 따라, “이병철 회장이 태어나자 부친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라는 뜻으로 봉황을 상징하는 벽오동을 심었다. 이병철 회장이 부자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여식의 혼수’와는 거리가 먼 해석이다.

 

하나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건 고금(古今)을 막론하는가 싶다. 이런 시가 전해온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가지에 걸렷세라.”

 

필시 이 시를 지은 이는 일장춘몽으로 끝났겠으나, 오늘날과 비유하자면 로또를 부여잡고 대박을 꿈꾸는 민초의 심리와 동상(同床)의 일몽(一夢)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