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수하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싸늘한 주검이 된 박정희.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넉 달 전에 태어났다. 필자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박정희란 이름 석 자 앞에는 늘 독·재·자란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누군가로부터, 어디선가 주구장창 들어온 ‘독재자 박정희’는 시나브로 필자의 뇌 언저리에 당연한 듯 자리했다.
고백건대 이런 고정관념 탓에 박정희 읽기는 쉽사리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필자를 박정희로 이끈 것은 순전히 김태광이란 이름 석 자다.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90여종의 책을 펴낸 그는 자기계발 전문가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박정희 스타일’은 역사적 관점에서 혹은 비평적 관점에서, 또 시류에 따라 리더십 관점에서 해석하고 써내려간 여느 박정희 서적과는 차별화된다. 무엇보다 박정희 이야기라고 해서 박정희에만 함몰돼 있지 않다.
이 책엔 역경을 딛고 일어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 이야기들은 동서와 고금과 시공을 초월한다. 그래서 신선하다. 박정희를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이다. 하지만 때론 과도하게 양념-그건 응당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박정희의 ‘Can do 정신’을 강조 혹은 부연하기 위한 성공 사례들이다-을 쳐대는 통에 박정희에게서 관심을 앗아가는 주객전도현상, 삼천포현상은 적이 아쉽다.
이를테면 박정희의 수많은 성과가 ‘된다’는 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107쪽) 면서 정작 박정희의 ‘된다의 된’ 사례보다는 명문대 나온 30대 여성 이야기, ‘딜버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만화가 스콧 아담스 성공 스토리, 또다른 대기업 취업성공 여성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 난치병에 걸린 잡지사 편집장의 극복 스토리를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언급하는 대목에선 대체 왜?, 그래서 박정희가 뭘 된다라고 해서 되었는데?-같은 의문을 갖게 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자기계발 전문가답게 자기계발의 당위성을 피력하는데, 그 이유가 박정희 정신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김이 빠졌다. ‘이렇게 비싼 돈 들여가며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남보다 일찍 성공하기 위해서다(234쪽).’ 글쎄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라면 몰라도, 적어도 박정희를 롤모델로 삼으라면서 부단히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이유가 남보다 일찍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어지간히 억지스럽고, 실망스럽다. 막바지로 신나게 달려가던 필자는 이 대목에서 책을 덮어야 할지를 매우 망설였다.
필자의 눈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종주한 건 작가에게 면죄부를 주어도 좋을 몇 가지 이유를 찾고서다. 그 몇 가지 이유는 이렇다. 이 책은 여느 박정희 서적보다 쉽게 읽힌다. 또 저자는 자기계발 전문가답게 박정희 스타일은 이렇다라고 번호를 매겨 독자에게 친절하게 환기시켜 준다. 일례로 저자는 ‘박정희 스타일’을 ‘박정희 카리스마’로 치환해 8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마치 박정희가 이렇게 해냈으니 당신도 이렇게 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단 걸 확신한다는 듯이. 8가지를 보자.
하나, 강한 집념과 목표를 설정하다.
둘, 유연하고 탄력 있는 인재경영을 실천하다.
셋, 강한 추진력과 철저한 현장주의를 지향하다.
넷, 선택과 집중하다.
다섯, 철저한 평가주의다.
여섯,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투자하다.
일곱, 신상필벌을 원칙으로 삼다.
여덟, 청렴결백을 신조로 하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필자와 박 대통령은 많이 닮았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필자는 무직자다. 잘 다니던 신문사를 작년연말 그만두었다. 당시엔 기자로서 할 일과 기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가 점점 모해지는 상황인데도 직장에 연명한다는 게 비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기자가 된 뒤 나름의 ‘기자 수칙’을 세웠다. 첫째 돈에 연연해하지 말 것, 둘째 촌지는 절대 받지 말 것, 셋째 접대 받을 자리와 받지 말 자리를 명확히 구분할 것, 넷째 취재원과 타사 기자와 교분을 쌓아도 호형호제는 절대하지 말 것, 다섯째 나 귀한 줄 알면 남 귀한 줄도 알 것 등이다.
필자는 신문사에 재직하는 5년 2개월간 묵묵히 이 수칙을 잘 지켜왔다. 그런 면에서 누구보다 집념이 강했고 목표 설정이 뚜렷했다. 강한 추진력과 철저한 현장주의를 지향했음도 물론이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에도 열 올렸고, 일을 할 땐 늘 선택과 집중을 우선했다. 하지만 필자가 기자직을 버린 건 정작 청렴결백 때문이었다. 신문사 여건과 환경이 빠르게 청렴결백과는 벽을 쌓게 했고, 필자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필자가 이 세상 소풍 끝마치는 날 그래도 참 뿌듯하다는 생각을 갖고 가려면 (놀랍게도) 일단 밥줄부터 끊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갈 지(之)자 행보가 시작됐다. 먹고사는 문제가 닥쳐왔다. 그건 곤욕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원고를 대필했고, 그것으론 부족해 학원가를 떠돌며 몇 달치 생활비를 충당했다. 생애 첫 초라함을 맛보았다. 썼다! 스물 둘에 강원도 최전방의 영롱한 별을 올려다보며 가진 기자의 꿈은 일장춘몽이 돼 버렸다. 또다시 꿈을 꾸어야한다. 이번엔 원대한 꿈을 꾸어야겠다. 두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이 책이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하나,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타인에겐 한없이 겸손하자.
둘, 이제부터 하게 될 일은 후대에 도움 되는 일을 하자.
박정희의 업적은 기실 숱하다. 숱하기만 할 뿐인가. 미래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2차 대전 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대한민국(201쪽)’이라 할 만큼 박정희의 업적은 위대하다. 이 책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모델을 연구하는 각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지도자 박정희의 리더십과 새마을운동을 꼽는다(161쪽)고 한 뒤, 세계 각국의 새마을운동 벤치마킹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사례들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드라마틱하게 구성된 박정희 스토리를 읽고 우리가 무턱대고 감동받을 이유는 없다. 마하트마 간디는 “역사의 영웅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역사 서술은 ‘진실의 반영’이 아니라 ‘철학의 반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철학을 헤아려 저마다의 깜냥대로 박정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가 박정희를 우러러보고, 흠모해야 할 마땅한 소이(所以)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 역대 대통령 중에서 비자금 같은 돈과 관련된 구설에 오르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는 무릇 투철한 국가관, 어른다운 성숙함과 함께 수준 높은 도덕성을 고루 겸비해야 할 것이다.
둘, 나만 잘 사는 ‘나만주의’를 지양하고, 너도 잘 사는 ‘너도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마디로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겠다. 홍익인간은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보편타당한 가치이다.
셋, 당대를 넘어 후대가 잘사는 세상을 위해 몸 바쳐 일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생전에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우리 후손들이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1970년).”라고 했다.
‘박정희 스타일’을 통해 스스로를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자발적 백수’의 길은 옳았다. 또다시 필자의 청렴과 결백을 자본과 바꾸라는 유혹에 직면한대도 필자는 똑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필자는 이제 “밥줄 끊기니까 후회되지”라는 야멸친 질문에, 초라함을 거두고 “천만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의 책상 위 네모난 액자 안엔 논두렁에 걸터앉아 막걸리 마시는 박 대통령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임자, 밥줄 좀 끊기면 어때! 아직 창창하잖아.”-라고 격려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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