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스토리 지식박스

[지식박스T 사회] 로드킬(road kill)


# 로드킬- 두 고양이 이야기

살묘(殺猫)의 현장을 포착했다. 벚꽃 만발한 직지사 들머리에서. 

불의의 사고였을 게다. 가해자는 이미 오간데 없었다. 고양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살났다. 

고양이는 억울했을 거다. 난데없이 돌진해 온 차 앞에서 무기력했을 거다. 차가 커다란 벽처럼 보였을 때 네 발에 힘이 풀리고, 그 순간 죽음을 직감했을 거다. 

가해자는 물컹함을 느꼈을 거다. 앞바퀴 한 번, 뒷바퀴 또 한 번. 가해자는 그 실체를 확인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썅!" 그리고 곧장 액설러레이트에 힘을 주어 내달렸을지 모를 일이다. 

살묘, 아니 로드킬(road kill. 도로에서 동물들이 치여 죽는 것) 현장은 대체로 그렇게 끝이난다. 피해 대상만 억울하고, 가해 대상은 기분 나쁜 것으로 끝나는 게 로드킬의 실체다. 피해 대상이 미물微物인 까닭에 그렇다.


1. 검정고양이가 형체를 알수 없게 된 누렁고양이를 향해 다가간다.


그런데 미물의 죽음은 때론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늘 희생된 고양이는 누렁고양이였다. 그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검정고양이다. 어쩌면 부부였는지도 모른다. 검정고양이는 한동안 몇 발자국 떨어져 멍하니 누렁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치 '이게 꿈이냐 생시냐'는 듯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누렁고양이를 향해 나아갔다. 그 걸음은 먹잇감을 낚아챌 때의 보법步法과는 차원이 달랐다. 검정고양이는 누렁고양이의 마지막 길에 조의弔衣라도 표하려는 듯 그의 머리맡에서 머리를 가만히 조아렸다. 벚꽃이 만발한 오후! 검정고양이는 벚꽃이 하얗게 불타오르는 심정을 느꼈을 테다. 친구의 황망한 죽음. 조금 전까지 앞발로 '복싱놀이'를 하며 놀던 친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뜯기고 찢긴 모습을 목도하는 그의 심정이란, 어떠했을까.



2. 검정고양이가 '이게 꿈이냐 생시냐'는 듯 목을 길게 뺀 채 누렁고양이의 머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조의도 잠시, 검정고양이는 꽃구경 나온 차량 행렬에 이내 자리를 떠야했다. 아니, 비켜나야 했다.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그는 도로 중앙선을 밟고 서서 저 멀리 다가오는 자동차를 얼마간 뚫어져라 응시했다. 놀란 운전자는 검정고양이를 향해 전조등을 깜빡였다. 급할 땐 미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전조등 켜는 것은 마찬가지임을 알려주겠다는 듯. 그건 아마 인간에 대한 엄중한 이중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친구를 두 번 죽이지 말라는 경고와 더불어 나도 한 번 죽여보라는 분노의 경고. 

검정고양이는 도로밖 돌덩어리 위에서 누렁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3. 검정고양이가 누렁고양이 머리맡에 조의를 표하듯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아픔이란 감정은 여러 감정이 씨줄과 날줄로 뒤섞여 있을 땐 쉬이 솟구치지 않는 법이다. 하루가 지나 분노가 가라앉고, 이틀이 지나 슬픔이 가라앉고, 사흘이 지나 황망함이 가라앉고, 이런 식으로 다른 감정이 가라앉고 온전히 아픔만 남았을 때, 기억의 창고는 문이 열린다. 그와의 추억이 하나 둘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때 맞닥뜨리는 아픔이야말로 가슴 찢어지도록 아픈 법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 감정은 매 한 가지! 아니, 어쩌면 동물들이 아파하는 법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옛 어른들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둬 먹이는 게 아니라고 했을꼬!



4. 검정고양이가 저 멀리 자동차 엔진소리를 듣고 뒷검으로 물러나고 있다.


고양이도 뒷걸음질을 가만가만 칠 줄 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고양이도 제 친구의 죽음 앞에서 고개를 조아릴 줄 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고양이도 어쩔 땐 세상을 향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어쩌질 못한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5. 검정고양이가 중앙선 위에서 '내 친구를 두 번 죽이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듯 달려오는 자동차와 마주하고 있다. 자동차는 급하게 전조등을 밝혔고 그제야 고양이는 길가로 나갔다.


미물의 죽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로드킬 발생 횟수는 2001년만 해도 400여건에 그쳤지만, 2005년부터 연간 3000건으로 급증했다.<표 참조>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도로공사(도공) 무주지사는 2009년 대전동물원의 협조를 얻어 호랑이 울음소리를 녹음해 간 일이 있다. 덕유산을 관통하는 중부고속도로 대전~통영 구간 도로변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산 쪽으로 호랑이 울음소리를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이런 고육책에도 불구하고 로드킬 횟수는 증가일로에 있다.